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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마도의 잊히지 않는 시간의 풍경

by 아침조각 2025. 9. 25.

 

전라남도에서 가장 북쪽, 전북 부안과 바다를 사이에 둔 경계선에 안마도(鞍馬島)가 있다. 이름처럼 말안장을 닮은 지형을 품은 이 섬은 면적 5.8㎢, 해안선 약 36km의 규모에 비해 유독 고요하다. 파시(波市)의 흥청거림을 겪었고, 국가 목장과 당산제의 기억을 품었으며, 지금은 꽃게·서대·민어가 오가는 선착장에서 일상의 박동이 이어진다. 법성포 계마항에서 배로 향하던 길, 물때와 풍랑에 운항 시간이 달라지는 까다로운 접근성마저 이 섬에는 묘한 매력으로 남는다. 바다는 더 이상 조기를 가득 실어 나르지 않지만, 안마도는 여전히 살아 있는 해양문화의 박물관이다. 이번 글에서는 계마항과 가마미해수욕장에서 시작해 안마도의 역사·생활·길들을 따라 걸으며, 섬이 들려주는 오래된 이야기와 오늘의 얼굴을 소개한다.

 

 

 

 

안마도의 잊히지 않는 시간의 풍경

 

 

1. 가마미해수욕장, 배 시간, 그리고 섬으로 드나드는 법

안마도 여행의 첫 관문은 법성포에서 차로 20분 남짓 이동한 계마항이다. 정사각형 포구를 감싸는 두 방파제, 경사제와 물양장, 수협과 해양파출소, ‘가마미활어회센터’가 이어진 동선은 “어항+포구”의 역할을 동시에 수행한다. 포구에서 직진 500m쯤 더 가면 반달 모양의 가마미해수욕장이 펼쳐진다. 길이 약 1km, 폭 200m의 백사장과 소나무 숲이 어우러져, 한때 호남 3대 해수욕장으로 불리던 곳. 지금은 원전과 개발 여파로 모래밭이 줄었지만, 노을 질 무렵의 곡선미는 여전히 빼어나다.

안마도행 배편은 물때와 날씨에 민감하다. 서해 특유의 큰 조차 때문에 출항 시각이 날마다 변동하고, 풍랑주의보가 떨어지면 운항이 중지되기도 한다. 여객선은 하루 1회 왕복이 기본이며, 차량을 싣는 차도선은 선착순이라 성수기에는 대기표가 필수다. 배는 종종 송이도–석만도를 경유해 들어가며, 바다 위에 일곱 섬이 줄지어 선 칠산군도를 먼 수평선에 그려 넣는다. 과거 조기의 천국이던 칠산어장을 스치는 동안, 지금은 보기 드문 고깃배 대신 대형 상선이 저만치 지나가며 ‘바다는 변하고, 섬은 남는다’는 사실을 조용히 확인시킨다.

안마도 선착장에 닿으면 안쪽 깊숙이 만입된 천혜의 포구가 여행자를 맞는다. 죽도·오도·횡도 같은 부속섬들이 항구 입구에 바람막이처럼 서 있고, 안쪽에는 모래해변–사구–석호가 차례로 놓여 U자형 품을 만든다. 수심이 깊어 서해 갯벌의 이미지와 다르고, 먼 바다 특성상 파고가 높아도 피항이 가능한 안정감이 있다. 이 포구에서 섬의 하루가 시작되고 끝난다.

 

 

2. 말 목장의 섬에서 파시, 지네주, 소방목까지: 안마도의 역사와 생활문화

안마도의 이름은 말에서 왔다. 『세종실록지리지』 영광조에는 “안마도에 암·수말 33필 방목” 기록이 보인다. 고려·조선을 거치며 말은 곧 국가 역량이었고, 섬 곳곳에 국영 목장이 설치됐다. 안마도는 그 유산을 지명(鞍馬)과 당산제의 ‘철마’ 신체로 품고 오늘까지 전한다. 음력 정월이면 마을마다 당제를 올리고, 당나무(팽나무) 아래서 풍어와 안녕을 비는 의례가 이어졌다. 월촌·신기 일대의 굵직한 팽나무들은 지금도 그 시간을 기억하는 살아 있는 문화재다.

한편, 섬의 생활은 늘 바다와 농토 사이를 오갔다. 건산(145m)–막봉(167m)–뒷산(177m) 능선 아래 구릉을 개간해 밭농사를 짓고, 석호를 막아 만든 논에서 벼를 심었다. 바다는 코앞이지만 한때 어업 의존도가 낮았던 이유다. 그런데 칠산어장이 황금기로 접어들며 안마도 앞바다에도 파시가 섰다. 월촌리 낫바위(광암) 일대에 20여 호 술집과 색시집, 해상행상 배가 모여들고, 풍선(돛배)들이 들어올 때면 바다는 불야성이었다. 배 위를 건너 죽도까지 걸어갈 수 있었다는 회고는 파시의 밀도를 웅변한다. 하지만 남획과 어장 쇠퇴, 그리고 동력선 도입으로 시대가 바뀌며 파시는 사라졌다.

생활의 축은 몇 차례 더 옮겨졌다. 김양식은 1980년대 지주식에서 1990년대 부류식으로 바꾸었으나 가격 경쟁력 저하로 결국 철수. 전복양식은 1999년 첫 성공 후 태풍·정전·수온·굴 부착 등의 복합 악재로 채산성이 무너져 다수가 중단했다. 대신 1976년부터 시작한 소 사육이 자리를 잡았다. 산에 울타리를 치고 방목하는 방식이라 ‘자연산’에 가까운 안마도 한우는 품질로 승부한다. 여름엔 죽도 인근 그늘을 찾아 내려오기도 하고, 겨울엔 보충 사료로 거친 계절을 난다. ‘가두어 비육’과 거리가 멀어 지역 브랜드화 가능성도 높다.

또 하나의 독특한 생업은 지네주. 안마도엔 유독 지네가 많은데, 5월 산란기 한 달이 채집 적기다. 건조·주정(50도) 담금으로 만든 지네주는 초록을 띠는 색과 강한 한방 향으로 알려졌다. 한의서에 전하는 효능(독·기생충·통증 완화 설화)과 섬 특유의 입소문이 더해져, 지네주는 효자 부수입이 되었다. 혐오와 약성 사이의 경계에서, 섬사람들은 계절을 놓치지 않고 작은 경제를 일군다.

사람살이는 강한 결속으로 이어졌다. 배편이 드물던 시절, 혼인망은 섬 안에서 형성됐다. 송이도·낙월도와 지리적으로 가깝지만 통혼 관습은 달랐고, “몇 겹 사돈”이라는 표현이 일상일 만큼 촘촘한 유대가 생겼다. 오늘은 배편·통신 발달로 전국 단위로 열렸지만, 섬의 성긴 시간은 여전히 이웃의 얼굴로 남는다.

 

 

3. 포구–마을–학교–숲길, 그리고 떠나는 마음

안마도의 첫 풍경은 늘 포구다. 여객선이 닿는 경사제 옆으로 청정의 섬 안마군도 표지석, 대합실, 물양장의 어구 더미, 20여 척 배의 뱃머리가 늘어서 있다. 길을 나서면 파출소와 민박, 발전소, 모래해변, 쉼터가 스쳐 지나고, 마을 초입에 보건진료소와 공중목욕탕(주 1회, 남·여 시간 분리)이 자리한다. 그 맞은편엔 낙월면 안마출장소와 함께, 법성포초·중학교 안마분교장이 나란히 서 있다. 소나무 숲으로 감싼 교정은 분지형 모래동산에 앉아 있고, 과거 학생들이 야산에서 옮겨 심었다는 소나무들이 바람막이가 되어 준다. 지금은 교사 1, 학생 수가 손에 꼽을 만큼 적지만, 운동장 모래와 깃대, 녹슨 철봉은 섬 교육의 끈을 상징한다.

마을을 벗어나면 안마길 1길을 비롯한 농로가 사방으로 뻗는다. 레이더 기지로 향하는 길, 월촌–신기 두 마을을 잇는 논두렁길, 석호를 매립해 만든 섬 유일의 벼농사 지대, 그리고 해변으로 떨어지는 샛길이 이어진다. 월촌 노인정 옆 팽나무 군(둘레 397cm급)과 신기마을 팽나무 다섯 그루는 잠시 걸음을 멈추게 하는 명당이다. 바람이 센 날이면 서쪽으로 영외리를 넘어가 본다. 겨울 북서풍을 피해 배를 대던 곳, 지금은 한층 고요한 물빛만 가득하다.

죽도로 이어지는 둑방길을 걷다 보면 소 방목 울타리를 마주치고, 길 위에는 소똥이 점점이 말라 있다. 초소 터 주변 풀을 뜯는 소들, 바위와 모래밭이 맞닿은 작은 만(灣), 해가 기울며 길게 드리우는 방파제의 그림자—이 묵직한 정적 속에서 안마도의 시간이 보인다. 섬 중앙부 구릉을 타면 건산–막봉–뒷산의 능선이 손에 잡히고, 정상부에서 내려다보는 포구의 U자 품은 이 섬이 왜 오랫동안 항구였는지 답을 알려준다.

생활의 현장도 잠깐 엿볼 수 있다. 오후 1시 출항 차도선을 맞추기 위해 꽃게 그물을 걷어 수조차로 옮기는 풍경, 법성포 어판장 대신 선착장 직거래로 가격을 맞추는 협상, 한켠에 놓인 지네주 한 병의 위로. 전복양식장은 멈췄지만, 어구·통발·부표들 사이로 섬사람들의 오늘이 분주하게 흐른다.

그리고, 안마도를 떠나면서. 국립해양문화재연구소가 정리한 기록처럼 이곳은 해양 역사·민속·생업·민가가 뼛속까지 배어 있는 섬이다. 조선의 목장, 고려 석곽묘, 봉수·입석, 당터와 당산나무, 파시의 흥망, 전복·김·소방목의 굴곡, 학교와 목욕탕의 작은 일상까지 안마도는 멀고 불편한 섬이 아니라, 지워질 수 없는 생활사가 켜켜이 쌓인 살아 있는 아카이브다.

여행자는 때로 풍경을, 때로 이야기를, 어떤 날엔 그냥 사람의 표정을 들고 나간다. 배 시간이 들쑥날쑥해도, 바람이 거칠어도, 이 섬이 오래 기억에 남는 이유는 분명하다. 외로운 기점으로 서 있지만, 비어 있지 않은 삶이 있기 때문이다. 다음에 다시 올 때는 물때표를 더 꼼꼼히 확인하고, 월촌 팽나무 그늘에서 쉬어가며, 선착장 분주한 손길에 수고하세요 인사 한마디 더 건네고 싶다. 그 사이에도 안마도는 바다와 육지 사이, 경계의 섬으로 묵묵히 하루를 이어갈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