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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무의도, 본도와 인도교로 이어진 바다 산책의 섬

by 아침조각 2025. 9. 30.

인천광역시 중구 무의동 앞바다에 자리한 소무의도는 면적 1.22㎢, 해안선 길이 2.5km, 최고점 74m의 아담한 섬이다. 59가구 92명이 사는 작은 공동체이지만, 대무의도와 소무의도를 잇는 인도교가 놓인 뒤로 섬은 한층 가까워졌고, 바다를 따라 걷는 무의바다누리길이 열리면서 일상의 섬에서 걷기 좋은 섬으로 변모했다. 섬 이름의 유래에는 선녀가 내려와 춤을 추었다 하여 무의(舞衣)라 불렀다는 설과, 장수가 관복을 입고 춤추는 형상에서 비롯됐다는 이야기가 전한다. 조선 중기에는 무의(無依)로 표기되기도 했으며, 행정구역은 부천군—옹진군—인천 중구로 여러 차례 바뀌었다. 한때 새우·조기 어장이 호황을 누리던 어촌이었으나 자원 고갈과 인구 감소로 쇠퇴기를 겪었고, 오늘은 인도교와 순환 산책로, 마을 미술 프로젝트, 작은 박물관과 체험형 해변을 축으로 사계절 찾을 수 있는 생활형 여행지로 다시 서고 있다. 이 글은 소무의도를 이해하는 열쇠로서 인도교와 누리길이 만든 접근성의 변화, 섬 한 바퀴 코스와 핵심 포인트, 소무의도의 전성기와 오늘의 재도약을 정리한다.

 

 

소무의도, 본도와 인도교로 이어진 바다 산책의 섬

 

 

 

1.인도교로 더 가까워진 섬, ‘무의바다누리길’이 만든 새로운 일상

소무의도 여행의 첫 장면은 인도교에서 열린다. 대무의도 북쪽 광명선착장과 소무의도 남방파제를 연결한 길이 약 414m의 인도교는 바다 위에 그은 선처럼 두 섬의 생활권을 묶었다. 과거엔 배 시간과 물때를 눈치 보며 건너야 했지만, 이제는 바람과 파도를 곁눈질하며 걸어서 드나들 수 있는 ‘열린 섬’이 되었다. 인도교를 건너면 소무의도 포구가 정면으로 펼쳐지고, 포구에서 곧장 이어지는 나무계단을 따라 오르면 바다와 마을이 동시에 내려다보이는 작은 정자에 닿는다.

섬을 도는 주 무대는 ‘무의바다누리길’이다. 마을 당제를 지내던 부처깨미, 모래·몽돌이 섞인 몽여해변, 명사의 해변 등 소무의도 ‘누리 8경’을 엮은 순환길로, 빠르게 돌면 1시간 남짓, 천천히 걸어도 두어 시간이면 충분하다. 길은 대체로 완만하고, 해안 절벽을 깎아 낸 데크와 박석 길, 마을 골목과 작은 숲길이 번갈아 이어져 리듬이 좋다. 다리 입구에는 흰 속살을 드러낸 백송이 서 있고, 동·서 마을 담벼락의 벽화들은 ‘섬집을 존중하다’라는 공공예술 프로젝트의 결과물로, 우물가 짧은 문장들까지 섬의 생활 감도를 살려낸다.

모예재는 동·서 마을을 잇던 옛 고개다. 어머니를 문안하러 넘나들던 아들의 정성에서 유래한 이름이라는 설명처럼, 길의 분위기는 다정하다. 발길을 옮기면 떼무리선착장 까지 200m 남짓이고, 이 구간은 낚시꾼들이 특히 사랑한다. 누리길을 걷다 보면 바다는 늘 곁에 있고, 물살과 바람의 방향에 따라 섬의 표정이 시시각각 바뀐다. 접근성의 개선과 길의 개장은 단지 관광객 유입 이상의 변화를 가져왔다. 주민의 생활 반경이 넓어졌고, 섬이 계절을 가리지 않는 산책 학습 체험의 무대로 확장되었다는 점에서 소무의도의 오늘을 상징한다.

 

 

2. 포구를 시작해 등대 라인까지 섬 한 바퀴 코스

소무의도는 ‘작지만 알찬’ 동선이 장점이다. 추천 코스는 포구에서 시계 반대 방향으로 도는 순환이다. 

먼저 섬 이야기 박물관은 소라를 닮은 외형의 3층 규모 전시공간이다. 어구전시관, 어촌생활전시실, 체험학습실, 영상관을 통해 소무의도의 생업과 생활사, 바다와 공존해 온 방식을 입체적으로 보여준다. 박물관 앞 몽여해변은 모래와 몽돌이 섞인 250m의 해변으로, 썰물 때 드러나는 개펄과 ‘언두꾸미’ 자리가 특징이다. 주목망이라 불렸던 전통 어획 방식 갯벌에 참나무 말목을 박고 그물을 쳐 썰물에 내려오는 고기를 받는 어법도 이 해역의 물살을 읽는 지혜를 증언한다. 남쪽으로 눈을 돌리면 작은 해녀도가 있고, 해 질 무렵에는 우리나라 최초의 근대식 등대가 점등된 팔미도 수역의 낙조가 먼 수평선에서 불러낸다.

박물관에서 산길을 타면 해양청소년수련원 간판이 걸린 오래된 건물이 나온다. 지금은 폐교 터이지만, 한때 마을의 아이들이 뛰놀던 장소였음을 말없이 알려준다. 이 지점부터 부처깨미길이 시작된다. 바다 쪽으로 툭 튀어나온 암반 전망대가 ‘부처깨미’인데, 만선과 안전을 기원하며 당제를 올리던 곳이다. 소무의도의 지형을 뱀이 또아리를 튼 형상에 비유하는데, 이곳이 머리에 해당한다는 전설도 전한다. 울창한 숲 사이사이로 바다가 깜빡이며 나타났다 사라지는 풍경이 인상적이다.

계단을 내려오면 떼무리길 과거의 지명과 지형 감각을 품은 길이 이어지고, 떼무리선착장으로 닿는다. 낚싯대가 줄지어 흔들리는 풍경을 지나 남방파제 인도교 라인으로 나오면 다시 포구로 회귀한다. 이 한 바퀴 안에 소무의도의 대부분이 압축돼 있다. 마을 벽화와 우물 글귀, 바람을 막아 주는 박석 길, 파도 소리를 가까이서 듣는 데크 구간, 바다를 뚫고 들어가는 방파제의 직선까지 장면이 자주 바뀌어 걷는 재미가 크다. 시간 여유가 있으면 대무의도 쪽 해변까지 묶어 ‘섬–섬 연계’로 확장하는 것도 좋다.

여행 실전 팁을 덧붙이면, 순환길은 경사와 계단이 적지 않으니 편한 운동화가 안전하다. 물때표를 확인해 썰물 시간대에 몽여해변·개펄 체험을 맞추면 더 즐겁고, 해질 무렵 남방파제 구간에서 서해 낙조를 잡으면 하루의 리듬이 완성된다. 섬 안 카페 식당 민박은 주말 성수기에 혼잡하므로 간단한 간식과 물은 챙겨 두는 편이 좋다.

 

 

3. 새우·조기의 섬, 전쟁의 배후 기지, 그리고 재도약의 발판

소무의도의 ‘어제’는 바다의 호흡과 함께 있다. 고려 시대부터 삶의 흔적이 이어졌고, 조선 말 《조선지지자료》에는 용유리의 일부 ‘떼무리’로 기록되었다. 1700년대에는 대무의도보다 먼저 사람이 들어와 살았고, 특정 성씨의 집성촌이 형성되면서 공동체의 뿌리가 굳어졌다. 20세기 중반까지 소무의도 근해는 새우와 조기가 몰리던 어장으로 이름을 날렸다. 조기어장이 쇠퇴하기 전인 1960년대 말에는 중선이 7~8척, 조기 철에 배를 타는 어부만 100명에 달했다. 1973년 인구는 70가구 337명, 분교생 65명이었다는 기록도 남아 있다.

근해의 전략성은 전쟁의 기억과 맞닿아 있다. 6·25전쟁 때 인천상륙작전 직전, 소무의도 바다에는 명령을 기다리는 전함들이 닻을 내리고 있었고, 섬은 병참 지원의 배후로 기능했다. 일제강점기부터 수협이 있을 만큼 어족자원의 보고였던 섬은 해방 이후에도 국내 정치사의 유명 인사들이 찾는 휴식처가 되었다. 호황은 길지 않았다. 자원 고갈과 연료비 상승, 인력 유출로 어업 수지는 악화했고, 섬은 빠르게 조용해졌다. 1990년대 중반 방문 기록에는 2.5t급 소형 어선 10척 남짓, 인구 100여 명의 한적한 섬으로 전락한 모습이 담겼다.

전환점은 인도교와 길이었다. 2010년대, 중구청이 대·소무의도 사이 인도교를 놓고, 누리길을 조성하면서 섬은 ‘사는 곳이자 찾는 곳’으로 균형을 되찾기 시작했다. 마을은 대규모 상업화 대신, 마을, 예술, 학습, 산책을 키워드로 작게 오래 가는 방식을 택했다. 벽화와 우물글, 박물관과 체험학습, 부처깨미의 의례와 전망, 몽여해변의 어법과 개펄, 떼무리의 지명사까지 소무의도는 자신의 역사와 언어를 길 위에 배치했다. 그 결과, 연중 10만 명이 넘는 방문자가 섬을 천천히 걷고, 사진을 남기고, 로컬 음식과 바다 바람을 소비하는 선순환이 만들어지고 있다.

물론 과제도 분명하다. 고령화와 빈집, 학교의 폐교는 섬 공동체가 안고 가야 할 현실이다. 하지만 길 위의 배움과 작은 박물관, 주민 주도의 체험 프로그램, 인근 섬과의 연계 관광은 살아 있는 섬으로 남기 위한 실천이다. 소무의도의 재도약은 거창한 개발이 아니라, 넘어다니는 다리와, 걸을 수 있는 길, 그리고 기억을 붙드는 이야기에서 시작되었다. 바다에 기대어 살던 섬이 바다를 품은 ‘일상 여행지’로 자리잡는 과정 그 자체가 소무의도의 현재형 역사이다.

 

소무의도는 한때의 호황과 긴 침묵을 지나, 인도교와 누리길이라는 일상의 인프라로 되살아난 섬이다. 포구에서 시작해 인도교로 이어지는 한 바퀴 안에 소무의도의 자연, 생활, 기억이 빼곡하다. 서해의 바람은 투박하지 않고, 계절을 타지 않는 길은 사근사근하다. 작기 때문에 가능한 밀도가 있고, 가까워서 자주 갈 수 있는 여지가 있다. 낙조가 내려앉는 해질녘, 부처깨미와 남방파제 사이 어둑한 물빛을 한 번이라도 본 사람에게 소무의도는 더 이상 지도 위 작은 점이 아니다. 바다와 사람이 서로를 살리는 방식이 무엇인지, 발끝으로 확인할 수 있는 섬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