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지털 행정은 행정 절차의 효율성과 투명성을 높이기 위한 핵심 수단으로 확산되고 있다. 온라인 신청 전자 문서 자동 심사 처리 현황 조회는 행정 서비스가 체계적으로 관리되고 있다는 인상을 준다. 그러나 실제 행정 처리 과정에는 시스템에 기록되지 않는 중간 단계가 광범위하게 존재한다. 이 중간 처리 단계는 행정 결과를 가능하게 만드는 필수 요소임에도 불구하고 공식 기록과 평가 구조에서 배제된다. 이 글은 디지털 행정 과정에서 기록되지 않는 중간 처리 단계의 구조와 그 의미를 분석한다.

1. 디지털 행정 시스템이 전제하는 처리 구조
디지털 행정 시스템은 명확한 흐름을 전제로 설계된다. 신청 접수 검토 승인 처리 완료와 같은 단계가 순차적으로 연결되며 각 단계는 시스템 로그로 기록된다. 이 구조는 행정 과정을 단순화하고 처리 속도를 측정하기에 적합하다.
그러나 실제 행정 업무는 이처럼 단선적인 흐름으로 진행되지 않는다. 신청 내용은 항상 표준화되어 있지 않으며 조건과 상황에 따라 추가 검토가 필요하다. 시스템은 정해진 기준에 따라 상태를 분류하지만 기준에 완전히 부합하지 않는 사례는 중간 단계에서 멈춘다.
이 멈춤 구간에서 사람이 개입한다. 시스템이 요구하지 않는 판단을 수행하고 자료를 확인하며 내부적으로 조율하는 과정이 발생한다. 이 과정은 행정 결과를 좌우하지만 디지털 기록에는 반영되지 않는다. 시스템은 상태 변화만 기록할 뿐 그 사이에서 이루어진 판단과 조정은 저장하지 않는다.
2. 중간 처리 단계에서 실제로 이루어지는 업무
디지털 행정에서 기록되지 않는 중간 처리 단계는 다양한 형태의 업무로 구성된다. 첫째 보완 판단 노동이다. 제출된 서류가 기준을 충족하는지 단순히 맞고 틀림으로 판단할 수 없는 경우 담당자는 관련 규정을 다시 확인하고 유사 사례를 검토한다. 이 판단 과정은 시스템 입력 이전에 이루어지며 기록되지 않는다.
둘째 내부 조정 노동이다. 한 부서의 판단만으로 결정하기 어려운 사안은 내부 협의를 거친다. 담당자는 관련 부서에 의견을 요청하고 상황을 설명하며 조율을 시도한다. 이 과정은 행정 처리의 핵심이지만 공식 처리 단계로 분류되지 않는다.
셋째 비공식 확인 노동이다. 신청 내용의 사실 여부를 확인하기 위해 전화 문의 추가 자료 요청 내부 조회가 이루어진다. 이러한 확인 작업은 행정의 정확성을 높이지만 시스템에는 최종 결과만 반영된다.
넷째 처리 순서 조정 노동이다. 업무량과 긴급도를 고려해 처리 순서를 조정하는 판단 역시 중간 단계에서 수행된다. 이 판단은 행정의 현실적 운영을 가능하게 하지만 기록되지 않는 영역에 머문다.
3. 중간 처리 단계가 기록되지 않는 구조적 이유
디지털 행정 시스템은 표준화와 자동화를 우선 목표로 삼는다. 이 과정에서 비정형적이고 상황 의존적인 업무는 시스템 설계에서 배제된다. 중간 처리 단계는 규칙으로 일반화하기 어렵기 때문에 기록 대상에서 제외된다.
또한 행정의 성과는 처리 속도와 완료 건수를 중심으로 평가된다. 중간 단계에서 소요된 시간과 판단은 결과에 흡수되며 별도의 성과나 비용으로 인식되지 않는다. 기록되지 않는다는 것은 관리 대상이 아니라는 의미이기도 하다.
행정 조직 역시 이 구조를 강화한다. 중간 처리 단계를 공식화하면 처리 시간이 늘어난 것처럼 보이기 때문이다. 시스템상으로는 빠른 처리가 중요하기 때문에 내부 조정과 판단은 드러나지 않도록 유지된다.
이로 인해 중간 처리 단계는 반복적으로 발생함에도 불구하고 예외적인 상황으로 취급된다. 그러나 실제로는 디지털 행정이 작동하기 위해 반드시 필요한 상시적 과정이다.
디지털 행정의 효율성은 시스템 처리 속도만으로 판단할 수 없다. 그 속도를 가능하게 하는 중간 처리 단계의 노동을 고려하지 않으면 행정 운영의 현실은 왜곡된다. 시스템이 매끄럽게 작동하는 것처럼 보이는 이유는 사람의 보이지 않는 판단과 조정 덕분이다.
중간 처리 단계가 가시화되지 않으면 행정 부담은 특정 인력에게 집중된다. 복잡한 사례와 판단이 필요한 업무는 경험이 많은 담당자에게 몰리며 이는 업무 불균형과 소진으로 이어진다. 그러나 이 문제는 공식 지표에 드러나지 않는다.
또한 중간 처리 단계가 기록되지 않으면 제도 개선의 기회도 사라진다. 반복적으로 발생하는 애매한 사례와 내부 조정은 제도상의 모호함을 드러내는 신호이지만 시스템에는 반영되지 않는다. 사람의 판단으로 문제를 해결하는 구조가 지속되면 제도는 개선되지 않는다.
디지털 행정은 기술만으로 완성되지 않는다. 기록되지 않는 중간 처리 단계는 행정의 품질과 정확성을 지탱하는 핵심 요소다. 이 단계를 인정하고 분석하는 것이 디지털 행정을 현실에 맞게 이해하는 출발점이 된다.
디지털 행정 과정에서 기록되지 않는 중간 처리 단계는 사라지는 과정이 아니라 숨겨진 구조다. 이 구조를 드러내고 운영 설계와 평가 기준에 포함시키는 것이 지속 가능한 디지털 행정을 위한 필수 조건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