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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인도에서 무인도로 다시 유인도가 된 섬 내초도

by 아침조각 2025. 9. 19.

경남 통영 앞바다 욕지도 근해에 자리한 내초도(內草島)는 한때 무인도로 사라질 뻔했으나, 다시 사람이 돌아와 삶의 불씨를 살려낸 섬이다. 내초도는 떠났던 사람들이 남긴 빈자리 위에, 다시 돌아온 사람들이 쌓아 올린 생활의 성벽으로 서 있는 섬이다. 유인도에서 무인도, 다시 유인도로의 변주는 불안정과 회복, 상실과 개간, 침묵과 노래가 번갈아 울리는 서사다. 바람과 파도, 동백과 염소, 작은 배와 짧은 선착장, 낚싯대와 우물, 학교터와 교회터가 한 화면에서 겹쳐지며 섬의 현재를 완성한다. 욕지도에서 그리 멀지 않지만, 내초도에 발을 디디는 순간 여행자는 도시의 시계를 벗고 바다의 시간을 받아들이게 된다. 이 섬은 크지 않다. 그러나 삶의 단단한 문장 몇 개로도 충분히 오래 기억되는 섬이다. 오늘도 내초도는 바람의 방향을 읽으며 묵묵히 자신의 하루를 이어가고 있다.

 

유인도에서 무인도로 다시 유인도가 된 섬 내초도

 

 

 

1. 풀이 무성해 ‘초도’라 불린 섬, 내초도의 뿌리와 시간의 궤적

 

내초도는 경상남도 통영시 욕지면에 속한 작은 섬이다. 면적은 0.45㎢, 섬 둘레는 3.8km, 주섬인 욕지도로부터 직선거리로 약 4km 떨어져 있다. 이름의 유래는 명확하다. 풀이 유난히 무성해 예부터 ‘초도(草島)’라 불렸고, 그래서 일명 풀섬이라 부른다. 서로 나란히 선 두 개의 섬 중 바깥쪽은 외초도, 안쪽이 내초도다.

내초도에 사람이 본격적으로 정착한 시기는 1889년 욕지면 개척 무렵으로 전해진다. 통영 광도면 죽림에서 건너온 전씨가 첫 터를 잡으며 마을의 시작을 열었다. 1970년대의 섬살이는 호전적이지 않았다. 외초도에는 1973년까지만 해도 4가구 19명이 살았으나 거주 조건이 불리해 이내 무인도가 되었고, 내초도는 같은 시기 15가구 84명이 살았고 분교생도 14명이나 있었지만, 안전한 선착장 부재, 농사와 어로의 한계, 무엇보다 자녀 교육 문제가 겹치면서 1994년 마지막 3가구 9명이 섬을 떠나 무인도가 되었다.

무인도의 시간은 길지 않았다. 2010년대에 접어들며 섬은 다시 호흡을 되찾기 시작했다. 2013년 봄, 내초도에는 1가구 2명의 주민이 삶을 꾸리고 있었다. 오늘의 내초도는 행정통계상 소수 인구가 지키는 섬이지만, 그 안에는 ‘떠난 자리’와 ‘돌아온 자리’가 공존한다. 빈 집과 폐교, 텅 빈 교회가 남긴 공백과 더불어, 텃밭과 염소 우리, 굴피 냄새 밴 돌담길이 다시 살아나는 장면이 겹쳐 있다. 유인도→무인도→유인도로 굴곡을 거친 내초도의 궤적은, 한국 도서 지역이 겪어온 인구 감소와 생활 기반 붕괴, 그리고 귀섬의 작은 불씨가 되살아나는 흐름을 잘 보여준다.

섬살이는 지형과 직조되어 있다. 내초도 마을은 섬 동북쪽 경사면에 자리를 잡고 작은 들판을 끼고 있다. 그 외 지역은 무성한 숲으로 덮여 있으며, 몽돌해변과 낮은 절벽, 바다와 맞닿은 바위턱이 이어져 있다. 대형 여객선이 댈 수 없는 짧은 선착장은 바위 틈을 시멘트로 메워 만든 소박한 시설이다. 양쪽에 배를 묶는 고리와 중앙 계단이 있을 뿐이어서, 파도가 높으면 접근을 포기해야 한다. 나무를 걸쳐 만든 소박한 다리, 사용이 중단된 우물, 흙이 드러난 시멘트 포장길, 무너진 돌 축대와 폐가, 교회의 부서진 십자가 같은 풍경은 섬이 겪은 시간의 흔적을 적나라하게 드러낸다.

그래도 사람의 손길은 완전히 끊기지 않았다. 해안이 내려다보이는 공터에는 모노레일 흔적이 남아 있다. 한때 선착장에서 물건을 끌어올리기 위해 설치된 것인데, 지금은 수레가 부서지고 케이블만 남았다. 마을과 들판 사이에는 염소 축사가 있고, 그 뒤로 흑염소와 닭이 방목되는 경사진 밭이 펼쳐진다. 작은 학교터에는 운동장과 교실 한 동의 잔영이 남아 있고, 벗겨진 흰색 철봉은 더 이상 아이들을 기다리지 않는다. 그럼에도 동백숲이 붉은 꽃을 피워내는 겨울의 풍경은, 빈 자리에도 계절이 찾아온다는 사실을 조용히 증명한다.

내초도는 어업의 최전선이라기보다 바람과 토양에 맞춘 농사로 연명해 온 섬이다. 바람에 강한 보리와 고구마가 대표 작물이었다. 바다와 숲, 바람과 밭, 돌담과 우물, 학교와 교회가 유기적으로 연결되던 시절의 기억이 지금도 길과 담벼락을 타고 흐른다. 섬을 걷다 보면, 외초도와 그 사이 작은 무인도를 향해 열려 있는 시원한 바다 전망이 시야를 씻어준다. 그 너머 연화도의 길게 뻗은 능선과 명물 네바위도 파란선으로 윤곽을 드러낸다. 내초도는 규모가 작지만, 바다 지형과 인문 지형이 포개진 섬이다.

 

 

2. 다시 유인도가 된 이유, 두 사람이 일군 그들만의 낙원 이야기

내초도의 귀섬 서사는 한 부부의 선택에서 시작되었다. 1990년대 중반 무인도였던 내초도에 들어온 이들은 전기도 수도도 없는 환경에서 삶을 새로 세웠다. 처음에는 촛불로 밤을 밝히고, 물동이로 우물과 계곡물을 길어 생활했다. 길은 풀이 뒤덮였고, 묵은 밭에는 가시덩굴이 얽혀 있었다. 부부는 수년간 손을 멈추지 않고 개간을 이어가 밭을 일구고, 바람을 읽어 염소 우리와 축사를 세웠다.

섬살이는 배움 없이는 불가능했다. 물때를 모르던 두 사람은 바다의 시곗바늘을 익혔다. 간조·만조를 보며 미역을 채취하고, 소라와 고동을 잡았다. 때때로 낚싯줄 끝에는 대물이 올라와 식탁이 풍성해졌다. 남쪽 바다의 햇빛과 바람은 농사와 염소 사육에 유리했고, 겨울이면 바람을 피하고 여름이면 바람을 맞는 자리 배치는 지혜가 더해졌다.

남편은 스스로 목수·농부·어부로 변주하며 섬의 모든 설비를 고치고 지었다. 전기와 급수도 결국 스스로 풀어야 할 숙제였다. 섬 안팎으로 정기 여객선이 다니지 않아 생활 물자를 보충하려면 배를 불러 작은 섬을 건너고, 다시 배를 갈아타고, 육지에서 버스 두 번을 더 환승해야 했다. 불편함은 견고한 루틴을 만들었다. 섬에 머무는 날은 자급자족의 시간을 촘촘하게 채웠고, 바깥으로 나가는 날은 필수 목록만 챙겨 기민하게 다녀왔다.

부부의 선택에는 치유의 서사도 얽혀 있다. 도시에서의 장시간 노동, 스트레스, 술과 담배로 병을 얻고 병원을 드나들던 삶이 섬으로 방향을 틀었다. 의사의 권유로 조용한 섬에서 휴식과 회복을 찾는 실험이 시작되었고, 결과는 뜻밖에 선명했다. 바다와 바람, 노동과 리듬이 몸을 달래주었다. 시기별로 텃밭을 일구고, 염소를 몰고, 미역을 말리고, 소라를 손질하는 일과는 시간의 규칙성을 회복시켰다. 섬은 그들에게 치유의 공간이자 자립의 무대가 되었다.

비 오는 날이면 섬살이의 클라이맥스가 찾아온다. 손질한 고기로 회를 뜨고, 갓 부친 전을 내고, 아껴 둔 약술을 한 잔씩 나눠 마신다. 작은 노래방 기계에 불을 붙이고, 춤을 추며 하루를 봉합한다. 바람이 세차게 불어오는 날에도, 고요가 내려앉는 밤에도, 섬은 두 사람에게 일과 노래와 휴식을 건네준다. 언젠가 매체에 소개되며 많은 이들이 이들의 삶을 봤지만, 화면에 담기지 않는 건 하루하루의 손의 기억이다. 그 손이 지금의 내초도를 만들었다.

내초도의 오늘은 화려하진 않다. 그러나 있어야 할 자리에 있어야 할 것들이 있다. 바람을 막는 돌담, 염소를 지키는 울타리, 바다와 밭을 잇는 좁은 길, 섬과 바깥세상을 이어주는 작은 배의 선창. 내초도는 호사롭지 않지만 단단한 생활의 문장들로 쓰여 있다.

 

 

3. 겨울이 깊을수록 빛나는 낚시섬 길 없는 길을 걷는 탐방 팁

내초도와 외초도는 통영·욕지권에서 감성돔 월동처로 이름난 바다다. 겨울이 깊어질수록 감성돔의 어군이 두 섬 사이에 붙어들어, 낚시꾼들 사이에서는 전천후 포인트로 통한다. 북서풍과 북동풍을 지형이 막아주는 자리가 많아, 바람이 센 날에도 비교적 안정적인 낚시가 가능하다. 특히 마을 앞 학교 아래 끝바리는 바다에서 보면 별 특징 없어 보이지만, 막상 내려서면 3~4명이 동시에 채비를 펼 수 있는 아늑한 갯바위 포인트가 된다. 오전 내내 햇살이 비추는 방향이라 체감 온도가 높고, 조류가 빠르지 않은 시간대를 고르면 입질도 기대할 만하다.

다만 내초도는 여객선 정기편이 닿지 않는 섬이다. 접근은 보통 욕지도 노적마을이나 인근 선착장에서 낚싯배 혹은 소형 선박을 이용해야 한다. 기상과 물때가 최우선이므로, 출항 전 풍속·너울·강수를 반드시 확인해야 한다. 섬 선착장은 바위턱을 시멘트로 보강한 작은 구조물이라 간조·만조에 따라 승하선이 어려울 수 있고, 파고가 높을 때는 접근을 포기하는 것이 안전하다. 구명조끼·스파이크화·헤드랜턴 등 필수 안전 장비는 기본이고, 쓰레기 되가져가기는 말할 필요도 없다.

탐방 자체를 즐기는 여행자에게도 내초도는 충분히 매력적이다. 선착장 주변의 몽돌해변을 지나 나무다리를 건너면 옛 우물과 교회터, 학교터로 이어진다. 길은 거칠고 이정표가 없으며, 비나 파도로 쉽게 흔들리는 임시 다리 구간도 있다. 미끄럼 방지가 되는 트레킹화, 긴 바지와 가벼운 장갑을 권한다. 숲길은 풀이 무성할 때 시야가 좁아지고 길이 희미해지므로, 초여름의 우거짐이나 장마철에는 탐방 난도가 높아진다. 기왕이면 가을과 겨울, 시야가 트이고 벌레가 적은 계절이 걷기 좋다.

마을 앞 공터에서 외초도와 연화도를 조망하는 순간은 내초도 산책의 하이라이트다. 겨울이면 동백꽃이 붉게 떨어져 길을 물들이고, 바람이 유난한 날에는 파도 포말이 바위턱에 하얗게 부서진다. 바다와 밭이 어깨를 맞댄 풍경 속에서, 염소가 풀을 뜯고 닭이 흙 목욕을 하는 장면은 섬이 여전히 살아 움직이는 공간임을 알려준다.

내초도의 여행은 편의시설을 기대하지 않는 것에서 출발한다. 식수와 간단한 비상식, 우의, 여벌 보온 의류를 챙기는 것이 좋다. 휴대전화 신호가 불안정한 구간이 있으므로, 사람과 함께 움직이는 것이 안전하다. 무엇보다 이곳은 누군가에게는 집이고 일터다. 양해를 구하고, 사유지와 가축을 배려하며, 섬의 조용한 리듬에 발을 맞추어 걷는 태도가 필요하다. 낚시로 섬을 찾는다면 채비 손실을 줄이려는 과한 포인트 진입은 피하고, 바늘·원줄 등 쓰레기를 남기지 않는 기본이 지켜져야 한다.

내초도 여행이 특별한 이유는 대단한 볼거리 때문이 아니다. 오히려 비어 있는 자리가 만들어내는 여백과, 사람의 손길이 다시 살아나며 만든 작은 질서, 그리고 바다의 리듬에 맞춰 하루가 흘러가는 느린 속도가 이 섬의 핵심이다. 한때의 폐허와 오늘의 생활이 한 프레임에 들어오는 경험은, 도시의 시간표로는 쉽게 만날 수 없는 장면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