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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러웨이 부인,하루의 산책이 드러낸 마음의 파도

by 아침조각 2026. 2. 5.

 

하루의 산책이 드러낸 마음의 파도는 버지니아 울프의 달러웨이 부인을 중심으로 겉으로는 평온해 보이는 삶 속에서 얼마나 복잡한 내면이 흘러가는지 살펴보는 글입니다.
이 작품은 의식의 흐름 기법을 통해 한 사람의 하루를 따라가면서도 삶 전체의 결을 보여주었습니다.
하루의 산책이 드러낸 마음의 파도라는 시선으로 달러웨이 부인의 내면과 그 시대의 공기를 함께 읽어볼 수 있습니다.

 

 

달러웨이 부인,하루의 산책이 드러낸 마음의 파도

 

 

 

1. 런던의 하루와 의식의 흐름이 만드는 새로운 서사

달러웨이 부인은 사건이 크고 화려하게 터지는 소설이 아니었습니다. 오히려 꽃을 사러 나가는 한 번의 외출과 저녁 파티 준비라는 사소한 일상 속에서 인물의 내면이 끊임없이 움직이는 작품이었습니다. 클라리사 달러웨이 부인은 오십대의 고관 부인으로 사회적 지위와 물질적 안정이 보장된 삶을 살고 있는 듯 보였습니다. 그러나 울프는 이 안정된 외관을 그대로 두지 않았습니다. 런던의 본드 스트리트를 걷는 순간부터 그녀의 의식은 과거와 현재를 넘나들며 끊임없이 흔들렸습니다. 독자는 그녀가 보는 거리의 풍경을 따라가다가도 어느 순간 기억과 회상 속으로 미끄러져 들어가게 됩니다.

울프가 사용한 의식의 흐름은 한 사람의 생각을 논리적으로 정리해서 보여주는 방식이 아니었습니다. 생각은 불쑥 튀어나왔다가 사라지고 냄새 소리 빛 같은 감각의 자극이 과거의 감정을 끌어올렸습니다. 소설 속 시간은 시계의 시간으로 흐르지만 인간의 내면 시간은 전혀 다른 속도로 흐른다는 사실이 반복해서 드러났습니다. 울프는 콜라주처럼 단편적인 기억을 붙이고 겹치며 하나의 줄거리를 만들어 냈습니다. 그래서 독자는 줄거리를 따라가기보다 의식의 리듬을 따라가게 됩니다. 이 리듬은 물결이나 바느질의 움직임 같은 이미지로 지속적으로 암시되며 달러웨이 부인의 마음이 흔들리는 방식과 닮아 있었습니다.

이 작품에서 런던은 단순한 배경이 아니라 의식을 흔드는 장치였습니다. 거리의 사람들 차 소리 갑작스러운 폭발음 같은 사건이 한 사람의 내면을 건드리고 그 충격이 또 다른 인물의 의식으로 이어지며 장면이 전환되었습니다. 전쟁의 기억이 남아 있는 시대의 공기는 이렇게 일상 속에 스며들어 있었습니다. 외출과 파티 준비라는 사소한 틀 안에서 울프는 전쟁 이후의 사회와 개인이 겪는 균열을 드러냈습니다. 이처럼 달러웨이 부인은 하루의 이야기이면서 동시에 한 시대의 심리적 초상이라고 할 수 있었습니다.

또한 울프는 기존 소설에서 중요하게 다루던 사건 설명과 성격 분석을 최소화했습니다. 누가 무엇을 왜 했는지를 친절하게 정리하기보다 인물이 어떻게 느끼고 어떤 방식으로 자기 자신을 지키려 하는지에 집중했습니다. 그 결과 독자는 달러웨이 부인의 외형적 행동이 아니라 그녀의 내면에서 진행되는 긴장과 기쁨 슬픔과 공포의 파동을 직접 체험하게 됩니다. 이 방식은 인간을 겉모습으로 판단하는 시선을 거부하고 인간이란 결국 보이지 않는 내부의 흐름으로 이루어져 있다는 모더니즘의 문제의식을 선명하게 드러냈습니다.

 

 

 

2. 클라리사의 내면과 파티라는 가면이 가진 의미

클라리사 달러웨이 부인은 파티를 준비하는 사람으로 기억되기 쉽지만 그 파티는 단순한 사교 행사가 아니었습니다. 파티는 그녀가 세상과 관계를 맺는 방식이었고 동시에 자신을 지키기 위한 장치였습니다. 그녀는 사람을 모으고 분위기를 만들며 관계를 연결하는 능력을 갖고 있었습니다. 겉으로 보기에 그녀는 여유롭고 안정된 삶을 사는 고관 부인이었습니다. 그러나 울프가 보여주는 클라리사의 내면은 끊임없이 자신을 규명하려는 질문으로 흔들렸습니다. 나는 누구인가 나는 어떤 삶을 선택했는가 나는 무엇을 잃었는가라는 질문이 파티 준비의 손동작 사이로 번져 나갔습니다.

특히 그녀가 자신만의 공간을 갈망하는 모습은 이 작품의 중요한 정조를 만들었습니다. 집으로 돌아온 그녀는 지하 납골실 같은 차가운 분위기를 느끼면서도 하인들의 부지런한 몸놀림에서 인간애의 따스함을 감지했습니다. 이처럼 그녀의 감각은 늘 양가적이었습니다. 안정과 공포 따뜻함과 고독이 동시에 존재했습니다. 그리고 그녀는 다락방으로 올라가 바느질을 하며 묵상에 빠졌습니다. 드레스를 손질하는 행위는 단순한 준비가 아니라 자신의 삶을 다시 짜는 행위처럼 묘사되었습니다. 한 땀 한 땀의 바느질은 마음을 가라앉히는 리듬이 되었고 그 리듬 속에서 그녀의 의식은 더 멀리 흘러갔습니다.

클라리사는 자신만의 세계를 지키고 싶어 했습니다. 타인이 침범할 수 없는 공간과 시간을 갖는 것이 그녀에게는 영혼을 보호하는 일과 같았습니다. 그래서 피터의 갑작스러운 방문은 단순한 손님 방문이 아니라 그녀의 내면 질서를 무너뜨리는 사건이었습니다. 피터는 감수성이 예민하고 낭만적이며 모험심이 강한 인물로 묘사되었습니다. 그는 삶을 타인과 공유하는 데 큰 의미를 두지 않고 자신이 느끼는 순간의 감정을 더 우선시하는 사람입니다. 클라리사는 그런 피터에게 끌리면서도 동시에 두려움을 느꼈습니다. 그녀는 안전과 질서를 선택해 리처드와 결혼했지만 피터의 방문은 그녀가 묻어두었던 감정의 층을 다시 흔들어 놓았습니다.

이 장면에서 울프는 선택의 결과가 어떻게 한 사람의 내면에 남아 있는지를 보여주었습니다. 클라리사는 과거의 선택을 후회한다고 단정하지는 않습니다. 다만 선택하지 않은 삶이 여전히 마음속에서 숨 쉬고 있다는 사실을 인정하게 됩니다. 파티는 이런 내적 균열을 감추는 가면처럼 기능하기도 했습니다. 그녀는 파티를 통해 사람들을 연결하고 공기를 부드럽게 만들며 자신이 가진 불안과 고독을 사회적 역할로 덮었습니다. 그러나 그 역할이 완벽한 보호막이 되지는 못했습니다. 오히려 파티라는 밝은 조명 아래에서 그녀의 내면은 더 또렷하게 드러나기도 했습니다.

 

 

 

 

3. 셉티머스의 죽음이 비추는 전쟁 이후의 상처와 클라리사의 자각

달러웨이 부인의 하루가 개인적 회상과 감각의 흐름만으로 이루어지는 것은 아니었습니다. 울프는 전쟁 이후 사회가 가진 집단적 상처를 셉티머스라는 인물을 통해 드러냈습니다. 셉티머스는 전쟁에 참여한 뒤 포탄 충격으로 정신이상 증세를 보이는 인물이며 세상과의 접촉 자체가 고통이 된 상태로 살아갑니다. 거리에서 들린 폭발음은 그에게 단순한 소리가 아니라 문명의 잔인함을 알리는 경보음이었습니다. 그에게 현대 사회는 치유를 제공하기보다 개인을 시스템 속의 대상처럼 다루는 공간이었습니다.

셉티머스가 치료를 거부하는 이유는 단순한 고집이 아니었습니다. 그는 의사들의 치료가 자신의 몸을 시험 대상으로 전락시키는 일이며 자신의 영혼을 빼앗기는 일이라고 느꼈습니다. 그래서 그는 끝내 창밖으로 몸을 던지는 선택을 합니다. 이 죽음은 비극이지만 동시에 저항의 형태로 제시되었습니다. 셉티머스는 죽음을 통해 자신의 운명의 주인이 되었다고 해석되며 울프는 그 죽음에 가치를 부여하는 방식으로 서사를 이끌었습니다.

중요한 것은 이 소식이 파티에서 전해질 때 클라리사가 느끼는 감정입니다. 파티는 살아 있는 사람들의 웃음과 대화로 가득한 자리였지만 그 한가운데에 셉티머스의 죽음이 스며들며 분위기가 잠시 흔들립니다. 클라리사는 그 이야기를 듣고 단순한 동정이나 충격에 머물지 않았습니다. 그녀는 감정이입을 통해 셉티머스의 의식 속으로 들어가며 그가 왜 그런 선택을 했는지 이해하려 했습니다. 그녀에게 셉티머스의 죽음은 남의 일이 아니라 자신의 영혼과 연결된 문제였습니다. 자신도 또한 타인에게 쉽게 설명할 수 없는 내면의 세계를 지키고자 했기 때문입니다.

다만 클라리사는 셉티머스처럼 과감하지 못합니다. 그녀는 혼란 속에서 잠시 동요하지만 결국 생의 안정으로 돌아옵니다. 여기서 울프는 한 인물이 가진 한계와 동시에 인간이 생을 유지하려는 본능을 함께 보여주었습니다. 클라리사는 죽음을 통해 자유를 얻는 선택을 하지 않습니다. 대신 살아 있는 상태에서 자신만의 세계를 지키는 방식을 택합니다. 파티는 그 방식의 연장선입니다. 그녀는 사회적 질서 속에서 살아가면서도 내면의 고독을 지키고 그 고독 속에서 자신을 유지합니다.

이 결말에서 클라리사는 누군가에게 완전히 이해되는 존재로 남지 않습니다. 피터의 시선 속에서 그녀는 불가사의한 존재로 남아 있고 그 불가사의함은 울프가 인간을 바라보는 방식과 맞닿아 있습니다. 인간은 한 가지 정의로 포착되지 않으며 타인의 시선으로는 끝내 다 설명할 수 없는 내면의 흐름을 지닌 존재입니다. 달러웨이 부인은 그 사실을 한 사람의 하루로 보여주었고 독자는 그 하루를 따라가며 자신의 내면 또한 비슷한 물결로 이루어져 있음을 깨닫게 됩니다.